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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리베카 표절 : 이유가 뭐였나? 방송출연정지!

가수 양준일이 슈가맨 출연 이후 연일 뜨거운 화제입니다. JTBC 슈가맨 출연 전부터 유튜브에서 계속 회자되며 화제였었지만 확실히 방송의 힘이 크긴 크네요. 기름에 불을 붙인듯 연일 뜨거운 화제입니다. 12월 20일에 한국에 다시 입국하여 연말 팬미팅 개최 계획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양준일의 데뷔곡 '리베카' 1집 수록곡이 표절 및 방송정지 되었다는 과거의 소식까지 화제가 되었습니다. 30년전 양준일과 리베카라는 노래에 무슨일이 있었을까요?

양준일 사진, 20대 초반의 그의 모습. 작은 얼굴과 넓은 어깨 21세기가 선호하는 미남상이다.

양준일 리베카 표절

1993년은 가수 양준일에게 가혹한 해였습니다. 데뷔곡이었던 리베카는 자넷 잭슨(마이클 잭슨의 여동생)의 'Miss you much'라는 곡을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었습니다. 결국 '공연윤리위원회'가 표절 판정을 내렸죠. 한번 들어볼까요. 

출처 유튜브, Miss you much

리베카의 도입부분과 미스유머치의 도입부분이 유사하게 들리긴합니다. 하지만 표절이라고 할 만큼 베끼진 않은 듯 보이는데요. 도입 부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곡이며, 같은 장르의 유사성 정도로 보입니다. 요즈음 같았으면 '샘플링'으로 넘어갈 수 있을 수준이네요. 그러나 요즘 시대와 달리 양준일이 활동하던 시기는 매우 보수적이고 압박이 심한 시대였음을 감안한다면 표절 판정으로 방송불가처분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DF

양준일 방송 출연 정지

양준일에 대한 방송계의 압박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가수 윤종신이 라디오 진행자로 있던 SBS 라디오 프로그램 '기쁜 우리 젊은날'에서 양준일과 윤종신 모두에게 방송 출연 정지 3개월을 처분했습니다. 영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며, 일부다처제에 대한 언급등이 부적절하다며 내려진 처분이었는데요. 이 에피소드를 보면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그 시대의 보수적인 정서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양준일이 사용한 영어단어는 Investigation, Arrest 였다고 합니다. 윤종신의 SNS에서 같이 라디오 했던 시절을 회고하네요. 

윤종신, 양준일 언급

양준일, 리베카를 이덕화로 바꾸어 부르다.

당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약어 : 토토즐)을 진행하던 MC 이덕화가 10년간 MC자리를 지켜오다가 마지막 방송을 하는 날이어서 방송사 측에서 양준일님에게 요청을 했다고합니다. '기약없이 떠나버린 나의 사랑, 리베카' 리베카 라는 발음이 이덕화와 유사합니다. '리베카를 이덕화로 바꾸어 부르는 이벤트성 무대를 만들자. '

양준일 리베카를 '이덕화'로 바꾸어 MC마지막방송 기념 무대를 구성

가수 양준일은 이를 수락했고, 즐거운 무대를 마쳤으나 아니, 웬걸. 사람들은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며 불량한 프레임을 양준일에게 씌웠더랬습니다. 순진하고, 순수하고, 맑고, 밝았던 청년 양준일에게 90년 초반의 방송계와 그 시대 사회는 그를 아무것도 못하게, 손발을 묶으려 들었습니다. 

양준일 패션 그리고 세련된 춤, 무대 퍼포먼스

2019년에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만큼 세련된 그의 패션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수준입니다. 당시의 유행하던 패션, 연예인들의 패션을 양준일과 비교해보면 정말 믿을 수 없을만큼 세련되었습니다. 양준일 91~93년도의 패션과 그 시대 유행했던 다른 패션을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91년대 가요톱텐 1위 장면들을 모아놓은 동영상을 보면, 그때의 연예인들의 패션, 무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영상을 가져왔습니다.

1991년, 양준일이 데뷔하던 해 가요톱텐 1위 장면들 (Youtube)

아래 영상들은 여가수이긴하지만 그 시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청순 가수 레전드로 남아있는 '하수빈'의 무대 1992년 영상, 그리고 김완선 영상도 추가로 올립니다. 

하수빈 1992년 무대 영상 (Youtube)
1992년 김완선 모습 (Youtube)

과거 영상이지만 저들도 한 시대 획을 그었던 이들이기에 지금도 아름답고 멋있습니다만, 양준일을 보고 느껴지는 세련됨은 차원이 다르달까요. 

양준일 무대 영상 모음 (1991~93년)

위 영상을 보세요. 앞의 영상들과 같은 시대라는걸 바로 알아챌 수 있나요? 마치 저들과 동시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패션과 무대 구성입니다. 양준일은 분명 두드러지는(outstanding) 사람일 수 밖에 없었네요. 지금은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천재 가수'라고 평가받고, 당시는 '유별나고 문란한 교포 가수'....

우리는 연예인을 가혹하게 평가하는 것이 30년 전 양준일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0년전 류승범에 대한 혹평. 기억하시나요. 2006년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류승범의 패션을 두고 워스트패션이라며 비난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류승범 2006년 워스트패션이었다고?

지금봐도 류승범의 13년전 패션이 세련되어 보이죠? 이게 마지막은 아닙니다. 2010년에도 또 한번 우리는 류승범 패션을 못 알아보았습니다. 

2010년 류승범의 패션.. 류승범과 양준일은 우리의 패션수준보다 훨씬 앞서갔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돌이 날아왔다',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이 싫다며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  
'아무도 곡을 써주지 않아서, 서툴지만 혼자 가사를 만들었다' 는 그의 증언을 들어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가장 개방적이라는 현 시점에도 류승범을 혹평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양준일에 대한 혹평, 비난은 과거의 류승범에 대한 비난보다도 훨씬 더 심각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양준일의 90년대 초 패션들
양준일의 화려한 패션
완벽하게 21세기 호감형 외모의 기준을 충족하는 양준일
출처 : 유튜브, 진진호 채널의 '시대를 앞서간 패션 양준일 패션, 코디모음!' / https://www.youtube.com/watch?v=Ppbn5NsYEgA

진진호 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양준일의 패션, 코디를 정리하는 영상을 올렸네요. 좌측의 양준일 모습은 90년대 초반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세련된 스트릿 룩을 보여주고 있다며 채널 운영자는 언급했습니다. 우측 상단에는 그 시대의 유행했던 촌스러운 패션을 언급하고 있네요.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당시 모습, 양준일이 이들보다 앞섰으나 패션은 서태지와아이들 보다 훨씬 세련된 느낌을 준다. 

양준일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댄스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양준일과 달리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양준일이 이들보다 나중에 등장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요? 90년대 초 양준일은 조용히 지는 별이되었으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는 다행히 자리를 잡고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뭐, 서태지와 아이들도 시작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데뷔 무대에 대해 혹평으로 점수 조작까지 있었다고 하니,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도 편견과 사회적 압박을 깨느라 분명 쉽지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90년대 후반에는 X세대를 중심으로 대중문화를 잘 흡수하고 수용하던 시대였기에.. 양준일이 5년만 늦게 나왔어도 달라지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대단한 서태지와 아이들도, 양준일과 패션만을 놓고 비교해보아도 양준일의 패션이 정말 세련됬다는게 한 눈에 보이네요. 

 

양준일은 왜 그렇게 미움을 받았나? 아니, 그에 대한 혐오였다.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양준일에 대한 방송계, 사회의 압박이 있었다는 걸 쉽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저렇게 미남에, 키도 크고 옷도 잘입는 가수를, 춤도 잘추고 노래도 세련되었는데 왜 그 때 사람들은 미워했을까요? 30년 전 우리 대한민국은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미니스커트를 규제하고 장발을 규제하던 70년대는 벗어났지만, '오렌지족'이라는 말로 교포들을 시기, 질투, 배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91년, 노태우 군부시절에 데뷔한 아름다운 가수 양준일. 그 때의 기성세대는 양준일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취급하듯 했습니다. 양준일에 대해, 파마 하지마라, 장발하지마라, 꽁지머리 하지마라 - ... 저게 게이냐, 변태냐, 여자냐 남자냐 그를 향한 폭력적인 시선, 언행들. 가수 양준일이 슈가맨에서 밝혔듯 공연 중에 돌을 던지는 관객이 있을만큼 그를 혐오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정말 충격적이고 마음이 찢어지는 이야기죠. 이 이야기를 담담히 꺼낼 수 있기까지 당사자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감히 짐작도 불가능합니다.

당시 기성세대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입는 옷차림을 해야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의 '보이프렌드진'패션이라거나 유니섹스 의상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보수적 시절. 지금에야 트렌디한 인물을 추종하고 멋있다고 표현하지만, 그 때는 거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순수하고 맑았던 20대 양준일을 한국 사회는 물질만능, 향락추구, 문란한 아이콘으로 보았던 것이죠. 또 그의(혹은 그와 비슷한 교포들의 라이프스타일) 화려한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요. 90년대 서울랜드의 오렌지족 출입금지 조치 사진을 찾아왔습니다. 

서울랜드의 오렌지족 출입을 불허한다는 표지판

위에서 언급하는 인물 묘사는 양준일을 떠올리게 하네요. 정말 시대를 잘못타고 났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가수입니다. 이제야 그를 알아본 21세기 우리들은 그의 지나간 세월이 안타깝고, 맑은 영혼을 가진 그가 수십년간 받은 상처에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마음 고생했을 그 세월은 아무도 보상해줄 수 없으니까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기를 팬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양준일 화이팅.